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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여행 :: 쉬어가는 시골 마을 자갈란트, 지옥의 오프로드 서막

제요미 2023. 7. 20. 12:00

자갈란트 마을에서 만난 까망이, 사람의 손길을 좋아하고 애교도 많았지만 현지인이 만지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까망이는 피부병이라도 있는 듯 이리저리 구르며 땅에 몸을 비벼댔다.



홉스골로 향하는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됐다. 홉스골은 몽골의 최북단에 있는데, 거리가 멀고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라 길이 좋지 않다. 그래서 작은 마을에 하루 머문 후 홉스골로 가는 경로가 일반적이다. 사막과 온천은 포장과 비포장도로를 넘나들며 큰 무리 없는 (당시만 해도 뜨악했지만) 길과 거리를 간다면, 홉스골로 향하는 일정은 그 이상이다. 가히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모든 팀원이 입모아 ‘정말 힘들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다행히 우리는 지금까지의 일정을 소화하면서 큰 사고나 돌발상황 없이 계획대로 여정을 밟고 있다. 타이어 펑크가 한번 난 적 있는데, 그땐 이미 숙소에 근접해 있었고, 베테랑 기사님의 손길로 우리가 목적지에 내려 일정을 소화하는 사이 뚝딱 고쳐졌다.

가이드 님은 전날부터 우리에게 이동이 힘든 일정이 될 거라고 예고(?)했다. 실제로 이날 끝 없이 넓은 초원의 비포장도로를 달렸는데, 이 길은 돌과 자갈이 많아 바퀴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거칠었다. (우리는 스타렉스를 이용했다. 홉스골로 달려오면서 현대차에 대한 엄청난 신뢰가 생겼다.) 신기한 건 몽골은 비도 자주 오지 않으면서 오프로드에 비가 고여 생긴 웅덩이가 남아 움푹움푹 패어있다. 그냥 비포장도로도 힘든데, 둥근 구덩이가 군데군데 패어있다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차가 흔들리고 얼마나 몸을 주체하기 어렵고 얼마나 헤드뱅잉을 해야하는지… 상상은 잘 안 될 거다. 이건 직접 경험해야 안다.

아침 일찍 만난 테르힝 차강 호수, 수면 위로 하늘이 비쳐 더욱 아름다웠다.

어제 저녁 이후 해가 드러나고서 아침부터 테르힝 차강 호수의 에메랄드 물빛이 나왔다. 우리는 가기 전에 절벽에 멈춰 기념 사진을 남겼다. 어제보다 더 감탄할 만한 그림이 담겼다. 전날부터 오롯이 즐기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사진 하나는 기념할 수 있도록 해가 나와준 데에 감사했다. 호숫가를 둘러가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고서 본격적인 지옥길이 열렸다.

산 속의 초원을 굽이굽이 건너가는 오프로드

물론 이 날은 이 길이 순한 맛이라는 걸 몰랐다. 우리는 오전 8시를 넘겨 출발하고, 오후 1시쯤 자갈란트 마을에 멈춰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각오하고 출발해서 그런지 길은 거칠었지만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 ‘이정도면 괜찮은데?’라는 분위기였다. 가이드님은 우리가 오늘의 일정을 아무 탈 없이 건너온 게 운이 좋은 거라고 그랬다. 뜻밖의 이른 휴식을 맞이한 우리는 점심을 먹고 찬 음료를 찾아 동네 마트를 순회한 뒤 숙소로 향했다. 마을과 조금 떨어진 (근데 길이 울퉁불퉁해 천천히 가야 했던) 숲 속의 통나무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숙소의 식당에서 내다본 통나무 집 풍경, 나는 여동생과 둘이서 네 번째 집에 머물렀다. 몽골여행 이후 2인 1실은 처음이었다. 게르보다 편안했는데, 유독 파리가 자꾸 들어와 원인 미상으로 툭툭 죽어갔다. 벌, 개미, 나방, 거미도 종종 보였다.
숙소에서 조금 걸어나오면 만날 수 있는 아주 흔한 풍경

관광 일정은 없었지만 자연이 아름답고 평화로워 좋은 인상이 남은 하루다. 산을 배경으로 숲과 시냇물을 끼고 창밖으로는 야크와 양 떼가 지나갔다. 따스한 햇살과 어울리는 원피스를 갈아입고서 근처를 돌아다니며 평화를 즐겼다. (시간이 남아서 팀원들과 모여 낮술과 게임도 했다.) 저녁 이후로는 걸어서 동네 마실을 나섰더. 목적은 마트 방문이었지만, 동네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흙길 따라 차나 말이 간간히 지나가고 동네 개들이 나들이를 나와 땅에서 뒹굴고 있었다. 떨어지는 석양 아래로 산등성이의 양떼가 풀을 뜯고, 색색깔의 지붕이 알록달록하게 어우러졌다.

몽골에는 유독 초코파이가 종류별로 다양하다.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빨간 캔의 카스, 6.9도라는데 한국에서 마시던 카스보다 더 씁쓸했던 것 같다.

동네 마실의 유일한 괴로움음 우리를 지나쳐가는 차 바퀴의 흙먼지였다. 몽골은 공기 자체가 건조해서 그런지 시골길에서 특히나 흙먼지가 심하다. 그렇게 먼지를 뒤집어쓴 채 숙소로 돌아왔다. 동네 수퍼는 조그마한 구멍가게 3군데을 들어갔는데, 어딜 가나 한국 제품은 꼭 있었다. 나는 여동생과 카스레드 한 캔을 시원하게 들이키며 숙소로 돌아왔다. 몽골은 차 문화가 발달하고 차가운 음료가 귀하지만, 맥주 만큼은 언제나 시원하게 마신다고 한다. 아쉬운 건 첫 날 마셨던 요거트를 여행 시작 후 찾아보지 못 했자는 점인데, 아무래도 냉장 유통 시스템을 갖추지 못 해 시골까지 닿지 못한 게 아닐까 추측했다.

허르헉, 이렇게 공격적으로 생긴 뼈대가 식은 상태로 질기다고 생각하면 된다. 치실이 왜 준비물인지 이해되는 음식. 기회가 된다면 따뜻한 허르헉을 맛보고 싶다.
허르헉한테 미안하지만 난 이 양고기 볶음이 더 맛있었어…

아, 그러고 보니 저녁은 특식이라는 ‘허르헉’을 먹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우리는 그동안 매일 같이 흰 쌀밥에 소(혹은 양)고기와 감자, 당근 등을 볶은 요리를 먹었는데, 맛이 나쁘진 않았지만 좀 질렸다. 허르헉은 다를까 기대했는데 오히려 별로였다. 양 뼈대에 붙은 고기의 양이 많지 않고 굉장히 질겨 입으로 뜯기 어려웠다. 심지어 고기인데 식은 상태로 나와서 더 먹기 힘들었다. (몽골 감자가 맛있다는 게 진짜 맛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음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맛있다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다들 내색은 못 했지만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결국 컵라면을 꺼내고 양고기 볶음과 밥을 추가로 주문해 식사를 보탰다.

내일 일정은 더 힘들다고 했지만, 이때만 해도 우리는 홉스골에서 보낼 다음날 밤을 기대하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테르힝 차강 호수도 맑았는데 홉스골 호수는 더 맑단다. 맑아서 물 속까지 보인다는 말에 반짝반짝 빛나는 투명한 호수를 그렸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그런 호수는 맞았다. 그런데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