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견지명이 되어버린 복치의 가방. 똥이의 여행 준비는 당연히 허술했고, 사이드 가방을 안 가져온 걔의 든든한 여행 메이트로 낙점됐다. 똥이의 애착 인형 숀과 함께 떠나기로.
내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모든 행동이 굼떴다. 미리미리 하는 법 없이 늑장 부리는 게 일상이었다. 가족들과 다 같이 외출해도, 나랑 둘이 데이트를 해도, 심지어 혼자 나가는 날도 늦는 게 당연한 삶이랄까… 누구도 동생에게 빠릿빠릿 행동하길 기대조차 안 했다. 내 인생 통틀어 가장 가까운 인생 메이트와 이토록 안 맞는다는 건 참으로 슬프고 좌절스러운 일이다.
전부 다 알고 있지만서도 난 항상 동생에게 새로운 행동거리를 제안했다. 그 다음으로는 스트레스를 받고 싸우길 반복했다. 기다리고 참고 보듬고 다시 잘 지내고를 체감상 수천수백번 해온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얄미운 그 기지배와 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기도 했다. 자매란 정말 애증 그 자체다.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열 받고, 중간이 없다.
이번 몽골 여행은 나와 걔의 두 번째 해외여행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참을 인을 수차례 새겼거늘,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내 동생. 앞으로 동생은 ‘똥’이라 칭하겠다. 동생 이름이 지로 시작하는데, 유치하지만 어릴 때부터 지똥 지똥하다가 이제 그 마저도 귀찮아서 똥똥 거린지는 한참 됐다. 웃긴 건 이젠 우리 가족이 전부 다 똥아 똥이 똥누나 이렇게 부르고 있다.
비행기 표는 오전 8시 10분 대한항공. 공덕에서 출발하는 공항철도 5시 24분 첫 차를 타고 6시반쯤 제2여객터미널에 내리는 계획을 세웠다. 내 서울 자취방에서 전 날 같이 자고 새벽 첫 차를 타면 딱 알맞은 일정이었다. 당연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날은 시작부터 늦었다.
“어젯밤에 주문한 옷이 아직도 안 왔어.”
전날 주문하면 새벽배송이 가능하다는 한 패션 사이트에서 아침에 배송이 안 왔다는 거다. 근데 나는 분명히 늦을 거라고 걔가 주문하기 전부터 앵무새처럼 말했다. 7월 11일 화요일에는 비가 하늘에 구멍 뚫린듯 쏟아졌는데, 그 때문에 그날 오기로 예정돼 있던 내 택배도 전부 다음 날로 밀려서 나 역시 택배 기자님을 목빠져라 기다리던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년은 항상 내 말은 귀등으로 듣고 한번 말해선 알아먹질 않는다.
결국 시간에 쫓겨 우리집으로 온 똥이는 입이 비쭉 나오고 표정은 한껏 우울해져선 투정투정을 부렸다. 본인이 나오고 15분 뒤에야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을 받았단다. 그럼 그렇지, 어휴가 절로 나왔다. 누가 여행 가기 전 날 옷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냐, 진짜 답답하다며 나는 또 가슴을 치고 같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시무룩한 걔를 데리고 용산 아이파크몰을 방문했다. 그렇게 쇼핑몰에서만 만보를 걷고 말았다.
참고로 몽골 울란바토르에 가면 국영백화점과 마트에서 웬만한 건 다 살 수 있다. 옷도 신발도 심지어 수영복도 기본적인 건 다 있어서 굳이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지 않아도 된다. 옷은 물론 마음에 들어야 하니 미리 구매하는 편이 좋지만, 만약 부족하게 갔다면 쇼핑도 가능하니 너무 상심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물티슈, 휴지, 일회용품 같은 공동 필수품부터 게르에서 제공이 안 된다는 수건이나 샤워용품까지, 한국 제품이 한글이 적힌 그대로 몽골에 다 있다. 아, 침낭도 있다.
물론 우린 몰랐고 나름 가득 채운 짐을 이고지고 비행길에 올랐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여행 당일날은 모든 일정이 차질 없이 흘러갔다는 점. 쇼핑몰에서 만보를 걸어버린 여행 전날 밤, 내가 갑자기 영화관 팝콘이 너무 생각나서 우리는 팝콘이 맛있는 롯데시네마에 굳이 찾아가 반반팝콘만 사가지고 나왔다. 낮에만 해도 너무 짜증났던 똥이와 이 시간에 새벽 첫차 타기를 앞두고 굳이 영화관 팝콘만 픽업해오는, 대책 없는 해외여행 전날밤을 보내는 사람들은 없을 거라고 낄낄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