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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여행 :: 깊은 산 속의 쳉헤르 온천, 그리고 파리와의 전쟁
    여행 & 나들이/해외여행 2023. 7. 19. 09:00
    공기가 차가울수록 온천의 매력도는 높아진다. 몽골은 해가 길기 때문에 최적의 시간대로는 저녁 먹은 이후를 추천한다. 단 오전에 받은 물이기 때문에 청결도는 장담 못한다.




    사막과 온천을 넘나든 하루였다. 전날 못 간 사막은 다행히 다음 날 길이 열려 잠시 들러갈 수 있었다. 엘승 타사르해에서 모래 사막에 발을 디뎌봤다는 정도의 기념 사진이 남았다. 뭔가 할 시간도 안 됐고 환경도 그저 그랬다. 이 사막에서 모래 썰매도 탈 수 있다고 하던데, 내가 선택한 일정에는 없었다. (모래를 뒤집어 쓰고 싶지 않았다.) 엘승타사르해의 모래는 입자가 곱지만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은 아니었다. 운동화를 신고 올랐는데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지도 않았다. 모래 언덕을 잠시 올라가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데 체감상 30분이 안 걸린 것 같다.

    에르덴조 사원

    쳉헤르 온천으로 가기 전에 에르덴조 사원을 들렀다. 지금의 울란바토르 이전의 수도였던 지역에 위치한 작은 절이었다. 몽골의 세계문화유산이라고도 한다. 몽골은 불교국가로 300만 인구의 90% 정도가 불교를 믿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불교의 비리도 적지 않단다. 몽골의 승려는 고기도 먹는다고 하는데, 머리도 아주 짧지만 대머리가 아니었다. 사원 안에 있는 부처 불상의 얼굴도 우리나라에서 보던 부처와 달라보였다. 몽골의 불교는 티베트 불교라고 한다. 아무튼 이색적이었고… 그런데 딱히 감흥이 없긴 했다. 근처 기념품 샵도 볼만한 게 없어서 스팟처럼 찍고 떠났다.

    쳉헤르 온천으로 가는 길은 험했다. 굽이굽이 비포장도로를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면 온천수가 샘솟는 온천 지역이 나온다. 그런데 경로가 산 길이라 차가 상상 이상으로 흔들린다. 살면서 이만큼 흔들리는 차를 타본 기억이 없다. (이 기록은 이날 이후 다시 깨진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진흙물이 군데군데 고여있고, 아예 시냇물처럼 물이 흐르는 곳을 차로 가로질러 가기도 했다. 도로의 경사도 제각각이라서 차가 수평으로 가지 않고 비탈면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한다. 한번씩 이렇게 가다가 차가 뒤집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쳉헤르 온천이 있는 곳은 꼭 텔레토비 동산 같다. 당장이라도 보라돌이와 아기 해가 뿅 나타날 거 같은 분위기.

    쳉헤르 온천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명확할 것 같다. 막연히 ‘온천’이라는 장소에 기대감이 높다면 분명 실망한다. 우리 역시 그랬다. 특히 온천을 구경하기도 전에 숙소에서 마주친 불청객이 우리의 에너지를 모두 빼앗아갔다. 몽골, 그 중에서 물가로의 여행을 계획한다면 여름 모기보다는 파리에 대비하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살면서 이런 파리떼는 만나본 적이 없고, 다행히 이 기록은 아직 유효하다. (이날 이후 우리팀 여자들은 모두 벌레에 무뎌지기 시작했다.) 게르의 천장 꼭지가 유리로 나고 양 옆으로 창이 달린, 나름 이 지역에서 좋다는 게르 리조트라는데, 그 유리 천장에 수십수백 마리의 파리떼가 몰려있었다.

    “나 여기 못 있겠어. 파리 소리가 너무 커.”

    파리가 대단히 피해를 끼치는 해충이 아닌 건 안다. 적어도 피 빨거나 물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소위 똥파리라 하는 큼직한 파리 수십 마리와 한 공간에 있자니 혐오감이 들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소리와 시체다. 유독 몽골의 파리는 겁 없는 것 같다. 사람 몸에 붙거나 주변을 돌며 귓가에 웽웽 거린다. 수가 많으니 소리는 더욱 크다. 게다가 아직도 원인은 모르는데, 게르 안의 파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힘을 잃더니 침대든 바닥이든 짐가방 위든 구분 없이 툭툭 떨어지곤 한다. 적어도 나와 같은 방을 쓴 팀원들은 한번 이상 파리 시체를 침대나 펼쳐놓은 캐리어에서 치워본 경험이 있다.

    우리는 짐을 다시 꾸려놓고 파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저놈의 파리떼를 몰아내기 전에는 숙소에서 캐리어 가방을 펼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1차로는 숙소 직원이 스프레이를 무기로 사용했다. 실시간으로 파리가 툭툭 죽어갔지만 모든 녀석을 퇴치하긴 역부족이었다. 2차 무기는 팀원 중 한 명이 가져온 모기향이었다. 약 3시간, 혹은 그 이상 동안 파리에게 방을 내어주고서 우리는 전의를 모두 상실했다. 온천이고 나발이고 그냥 두 다리 뻗고 쉴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인지 우리 숙소에서 온천에 몸을 담군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저녁 이후 직원이 한번 파리 시체를 쓸어주고 다들 침대에 몸을 누이기 바빴다. 모든 파리를 퇴치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파리떼의 합창은 잦아들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 처음에는 리조트라고 해서 다를줄 알았는데 똑같은 게르여서 내심 실망했다. 내부를 보고는 정이 떨어졌다.

    사실 쳉헤르 지역에 온천 리조트는 여러 군데 있기 때문에 나의 경험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렇지만 아마 전쟁까진 아니더라도 다른 지역보다 파리가 유독 많긴 할 것 같다. 엄청 큰 모기도 있긴 한데 걔는 물지 않는다고 하고, 개체수도 적다. 아무튼 파리에게 힘를 모조리 빼앗기고서 나는 해질녘쯤 수영복을 챙겨입고 온천에 들어갔다. 일정상 주말이었고 저녁 이후 시간대라 물이 깨끗하진 않았다. 온천수 자체도 석회질이 들어있어 약간 잿빛을 띠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어 들어갔는데, 들어가고 나니 노천 온천의 진가를 알게 됐다.

    “여기 들어가면 피부가 부들부들해져요. 풍경을 보면서 즐겨야 해요.”

    가이드님의 말에 용기가 붙었다. 저녁 이후 해가 저물어가면서 찬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나와 가이드님, 팀원 한명으로 총 3명만 몸을 담궜고, 여동생은 발만 적혔다. 우리는 노을을 바라보며 맥주를 한 캔씩 땄다. 파리 지옥에서 벗어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걸 쳉헤르에서 배운 것 같다. 온천에 두 시간 정도 몸을 담구고 샤워하니 수영복 안에서 날파리 시체가 나왔다. 샤워를 마친 후 게르에서 팀원들과 담소를 나누며 시원한 맥주를 한잔 했다. 온천수로 목욕에 샤워까지 마치니 피부가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쳉헤르 온천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청결에 민감한 사람에겐 비추, 자연 속 낭만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겐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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