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홉스골에서의 여행을 마쳤다. 울란바토르로 돌아가면서 테를지에 들리는 일정만 남았다. 홉스골로 가는 길이 지옥의 오프로드였다면, 울란바토르로 되돌아가는 길은 끝 없는 도로주행이다. 다행히 포장도로를 달리지만 이동거리는 남은 이틀 간이 가장 길었다. 몽골에서 이동할 때는 도로가 거칠고 타이어 펑크나 바퀴가 진흙에 빠지는 등 돌발상황이 많아서 시간이 아닌 거리로 말한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팀은 단 한번의 돌발상황도 겪지 않고 여정을 마쳤다.
다만 볼강으로 가는 길이 그저 포장도로라고 해서 고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몽골의 포장도로는 당연히 비포장도로보다 낫지만, 일반적인 도로는 아니다. 군데군데 상한 부분을 손보지 않아서 그런지, 오프로드에 비해 순한 맛이지만 마구 흔들리는 건 여전하다. 여행이 길어지자 힘들어 하는 팀원이 하나 둘 생겨났다. 특히 내 동생이 제일 힘들어 했다. (이제 집 돌아와서는 추억이었다고 미화한다;) 일단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며 후반으로 갈수록 모두가 걱정할 만큼 밥을 먹지 못 했고, 이날 멀미를 심하게 하다가 결국 전을 부쳤다.
오랑터거 화산 분화구에 오르는 길, 경사가 심한데 이 사진은 조금 완만해 보인다.뒤따라오는 일행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경사도오랑터거 화산의 옹달샘(?)
볼강은 사실 특징적인 볼거리가 있는 지역은 아니었다. 사실상 자갈란트 마을과 같이 그저 지나가는 길목에 거리가 멀어 쉬어가는 지역이다. 중간에 오랑터거 화산 분화구 트래킹이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기엔 좀 거시기(?)하니까 들어간 코스 같다. 앞전의 허르거 화산과 달리 그냥 산지 그 자체다. 휴게소니 화장실이니 그런 거 전혀 없다. 그냥 지나가다가 흔히 보이는 오름처럼 보이는 산을 보면서 ‘어, 저긴가, 아니 저긴가?’ 하다가 ‘오 여기구나. 다 똑같이 생겼네.’ 정도의 추임새를 끌어낼 정도의 평범한 산덩어리다. 특징이라고 하면 허르거 화산보다 더 오래 전인 25000년 전 터진, 왕고참(?) 화산이라는 점.
오랑터거 화산의 결정적인 특징은… 직접 오르는 자만 알 수 있다. 어떤 블로그에서 수풀을 머리채 붙잡듯 붙잡으며 올라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표현을 본 거 같은데, 어느 정도 공감됐다. 엄청 가파르다. 코스는 짧아 금방 오르지만 경사가 심하다. 체감상 30도 혹은 그 이상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오래된 화산이라 그런지 흙산이고 나무와 풀이 울창하게 자라있는데, 뭐라도 움켜잡고 올라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근데 사실은 하산이 더 힘들다. 흙길에 미끄러지면 앞서 내려가는 사람과 눈뭉텅이처럼 뭉쳐져서 굴러가는 게 아닌가 상상하며 종종 걸음으로 내려가야 했다.
물 온도를 체크하고 올라오는 빨간티의 사나이 ㅋㅋㅋ
정상은 나름 볼만 했다. 오랑터커 화산 정상에는 허르거 화산 만큼 혹은 조금 더 큰 샘이 고여있었다. 정상에서 다시 샘으로 내려가는 거리가 약간 있는데(심지어 가파른데), 같이 오른 팀원들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물 온도를 확인해보자는 내기를 했다. 다행히(?) 나와 여동생은 초반에 이기고, 남자 동행분 둘이서 결판을 내다가 한 분이 진짜로 내려가서 손만 담구고 올라왔다. 오랑터거 정상의 샘 물 온도는 정확히 18도라고, 달려 올라오며 소리치는 그 모습에 모두가 배잡고 웃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가파르지만 알짜 재미를 본 화산에서 내려오고서 이동이 80%였던 볼강에서의 하루 일정을 마쳤다.
그림 같이 나오는 통나무집 숙소, 안에는 파리가 특히 많다.예쁜 숙소 같지만 아니, 저 창문에 파리가 최소 10마리는 붙어서 윙윙댔다.
“와~ 또 통나무 집이네, 와… 파리 많겠다, 와….”
숙소는 또 다시 통나무집. 그동안 게르에 내성이 생긴 우리는 이전에 자갈란트 마을의 통나무집에서 입구 없이 들어와 이유 없이 툭툭 죽는 파리를 경험한 뒤 오히려 게르가 낫다는 말을 종종 했다. 이날 숙소 역시 파리가 많았는데, 우리 방은 창문을 열어 날리는 반면 남자 방은 전기파리채로 철저히 응징해 태워버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전기파리채는 진심 강력 추천이다.)
특이점은 화장실이 역대급 멀었다. 왕복 10분이 걸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가는 길은 잡초가 무성해 발을 씻고 나와도 샌들에 다시 흙과 풀, 운이 나쁘면 벌레도 들어와 엉망이 됐다. (실제로 신발 사이로 들어간 벌레를 발로 터트린 적이 있다.) 더욱 심각한 건 화장실 문의 아구가 안 맞아 모든 칸의 문이 안 닫혔다. 몽골은 게르고 화장실이고 아구가 안 맞아 문이 안 닫히는 일이 하루 걸러 하루는 있었던 것 같은데, 원초적인 부분에서 프라이버시라는 게 지켜지지 않으니… 거 참 변비가 걸리지 않을 수 없는 여행지다. 실제로 나는 한국에서 먹던 유산균(효과가 좋았던)을 거의 매일 먹고, 가능할 때마다 요거트를 사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님이 오셨다.
숙소 근처에서 만난 염소떼, 사진을 위해 이 정도 다가가면 염소 똥을 밟는 건 필연적이다.별빛이 내리는 통나무집의 밤
그래도 원초적인 걸 해결하고 나면 풍경은 막 찍어도 그림이다. 엘승 타사르해의 숙소에 이어 두번째로 제대로 누워 별을 봤는데, 제일 많고 밝은 별을 볼 수 있던 숙소였다. 커다란 돗자리를 대충 펼쳐놓고 다 같이 담요 덮고 누워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누워있는 낭만은 흔치 않은 추억이다. 별은 숙소가 외딴 지역에 위치해 환경이 열악하고(화장실이 개판이고 벌레가 많은) 주변이 어두워야(편의시설은 고사하고 밤이면 화장실 문을 잠구거나 물을 끊어버리는) 잘 보인다는 게 학계 정설이 아닐까. 하늘의 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고생했던 기억도 쑥 내려가는, 그런 요상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지역이다.
근데 별을 다 보고 이를 닦으려고 하니 진짜 화장실 문을 잠가버려서 생수를 꺼내야 했다. 아니, 대체 한밤 중에 화장실 문은 왜 잠구는 건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