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앞둔 나는 언제나 기대감이 푸분 채 하루하루를 지내왔던 거 같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무덤덤했다. 여행 떠나기 전 설레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인데, 그런 걸로 치면 올해 여행은 참 짧았다. 아무래도 나 역시 현실에 지친 직장인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올해 취업한 똥이도 덩달아 바빠서 우린 휴가를 며칠 앞두고 발등에 불 떨어진 듯 정보를 모았다. 어쩌면 이번 여행의 난이도가 낮아서 더 안일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러시아와 몽골을 거친 우리에게 일본은 좀 쉽게 느껴졌을 수밖에….
삿포로도 물론 열심히 돌아다니고자 마음 먹으면 어려운 여행지가 될 수도 있겠지만, 보통 한정적인 기간 내에 돌아다니는 일정이 비슷했다. 일단 언어가 안 되니 크게 벗어나는 일정을 짜기가 어려웠고, 우린 둘 다 바빠서 그럴 의지도 크지 않았던 거 같다. 우린 전전날 각자 할 일을 마치고 랜선으로 만나 부랴부랴 일정을 세우기 시작했다. 무계획 P들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비행기와 숙소, 일일 투어 정도로 충분히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순조롭게 여행 일정을 공유할 수 있었던 건 공유 노트 앱 ‘노션’ 덕분이었다. 문명인 똥이가 문명에 미개한 언니랑 여행 다니기 빡세다며 공유 노트 앱을 알려줬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실시간으로 여행 계획과 정보를 공유하며 큰 틀에서 계획다운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 랜선 회의에 노션 강추!! 거기에 어떤 영상 통화 앱까지 동원해서(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음) 새벽까지 여행 계획을 짰다. 일단 무리 없이 여행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루트를 짜고자 했다.
삿포로 시내와 인근 도시를 둘러보는 데는 4박 5일이면 즐기고도 남는다. 우린 출국 날 비행기 시간이 일러서 사실상 4박 4일 수준으로 놀았지만, 첫 날 첫 차를 타고 넘어가서인지 부족하단 느낌은 없었다. 마침 7말8초는 삿포로 맥주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어서 첫 날은 시내를 둘러보고 삿포로 맥주 축제를 즐기는, 무리 없는 일정을 짰다. 여름 삿포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비에이 후라노 투어는 2일차, 3일차는 가까운 인근 도시 오타루, 마지막 날은 삿포로 시내와 일부 외곽을 둘러보기로 했다.
삿포로는 시내와 인근 도시인 오타루와 하코다테, 노보리베츠 등을 둘러볼 수 있고, 직접 차를 빌려 갈 수도 있지만 주로 투어사를 통해 가는 비에이와 후라노 지역을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 겨울 여행지로 유명하지만 위도상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과 가까운 지역이라 여름철에 비교적 덜 덥다. 물론 요즘엔 이상 기후로 많이 더워져서 직접 가보니 한낮엔 더웠다. 그래도 습도가 낮은 편이라 해가 지고 나면 바람이 차다. 반팔 차림으론 밤에 춥다고 느껴진다. 딱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다.
필수 준비물로는 양산 양산 양산… 해가 쨍쨍하면 빛이 정말 정말 강하다. 선크림도 파고 들어 살갗을 다 태워버릴 거 같은 자외선이다. 덤으로 모자나 선글라스도 추천한다. 햇빛에 대처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 좋을 거 같다. 비도 한번씩 오락가락 오기 때문에 접이식 우양산이 유용하다. 양산을 가져가서 단 하루도 안 쓴 날이 없었다. 현지에선 반팔에 하루 긴 바지, 하루는 긴 치마, 이틀은 반 바지를 입었다. 반팔 차림으로 밤엔 추웠는데, 긴 팔 겉옷 챙기는 걸 매일 아침 깜빡함…
그리고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했다면 일본 입국 심사 따 숙소 주소를 구체적으로 적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호텔은 비싼 값인데 공간이 너무 좁아서 에어비앤비를 선택했는데, 입국 심사를 하면서 너무 귀찮았다. 그것만 제외하면 큰 불편함은 없었다. 숙소 위치는 스스키노 역과 니조 시장 근처였는데, 도보 여행에 적합했다. 스스키노 역 인근엔 맛집이 많고, 오도리 공원과 삿포로 TV타워가 가까워서 삿포로 시내 분위기를 즐기기 좋았다. 삿포로 역까진 약 20-25분으로 도보나 버스나 걸리는 시간이 엇비슷하다.
교통 패스나 IC카드(키티카)는 하지 않았다. 하코다테나 노보리베츠를 가는 게 아니라면 굳이 패스는 필요 없다. IC카드는 하면 편한데 보증금 돌려받는 과정 같은 게 귀찮아서 그때그때 표를 끊고나 동전을 내고 다녔다. 마지막 날 노면전차와 지하철을 환승하는 과정에서 환승권을 받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그 역시 어렵지 않았다. 키타카를 만드는 과정이 귀찮다면 없이 다니는 것도 괜찮다. 교통수단을 많이 이용하지 않을 예정이라면 자유롭게 선택하면 될 거 같다.
일본 여행은 대책이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는데, 가서 좀 허둥대긴 했지만 역시 괜찮았다. 그냥 일본 특유의 분위기와 식문화를 즐기고 쇼핑을 좋아한다면 꼭 가고 싶은 여행지만 콕콕 찝어놓고 편히 다녀오는 것도 좋을 거 같다.